우리는 왜 다시 지리산을 찾는가

요약

3박 4일, 38km의 지리산 종주. 노고단에서 연하천과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을 넘어 중산리까지 걸었습니다.

비에 젖은 능선과 고단한 산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라산과 지리산의 서로 다른 식생과 생태적 가치, 지리산에 새겨진 역사의 상처도 돌아보았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산길에서 나누는 온기와 연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생각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긴 산행 에세이입니다.

산을 걸었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사람이었던, 3박 4일의 기록입니다.


🌱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3박 4일, 37km.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화엄사에서 중산리까지의 지리산 종주 거리는 37.9km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제 산행 기록에는 37km만 남았을까요?

노고단대피소에서 출발하면서 산행 경로를 기록하는 Relive 앱의 ‘재개’ 버튼을 누르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입니다. 약 1km를 걷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부랴부랴 기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발걸음은 1km를 더 걸었지만, 기록에는 그만큼의 거리가 빠진 셈입니다.

그리고 다시 산행을 재개했으며 나는 38km를 걸었습니다.

노고단에서 연하천을 거쳐 장터목까지, 그리고 천왕봉을 넘어 중산리로 말입니다.

첫날은 맑았고, 이틀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다시 하늘이 열렸습니다.

산행은 고독한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토끼봉의 긴 오르막, 영신봉의 높은 계단을 넘던 고단한 발걸음, 비에 젖은 능선, 그리고 천하의 비경 앞에서 삶을 포기하려던 사람조차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연하선경, 그 길에서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과 마주하고,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경험합니다.

그러던 중 연하천대피소에서 한 문구를 보았습니다.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삶의 무게를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비로소 산을 찾으라는 뜻일까요?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누군가는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는 멀어진 사람들의 빈자리를 안고, 또 누군가는 평생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보기 위해 지리산을 찾습니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 동행자들

그중 한 분은 몽블랑 일대의 긴 트레킹 코스와 몽골의 광활한 초원까지 걸어본 노련한 산행인이었습니다. 20kg에 이르는 배낭을 짊어지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배낭에는 늘 음식이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그 음식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산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공유의 도덕률이었습니다. 산행 실력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 마음이었습니다. 저도 최소 5번 이상 얻어먹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나이가 70이 넘다보니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병들고, 누군가는 몸이 약해지고, 또 누군가와는 생각이 달라져 멀어졌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지 육체가 쇠약해지는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시간을 견디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이가 70이 넘어가면 자기 주위에 3명의 친구만 있어도 삶은 즐거울 수가 있다고.

그래서 그는 늘 혼자 산에 오른다고 말했습니다.


두 여인과 일흔 살의 산행인은 종주를 마칠 때까지 함께한 이번 종주의 동행자였습니다.

동행하는 동안 우리는 지리산과 한라산의 산행 경험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한라산이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산행의 묘미에서는 지리산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백록담에 이르기까지 약 9km의 긴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코스의 단조로움, 수많은 봉우리와 능선이 이어지는 지리산과 달리 하나의 거대한 산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비교적 단순한 경관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한라산에는 지리산이 보여줄 수 없는 또 다른 장엄함이 있습니다.

백록담 정상에서 제주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산과 바다가 맞닿은 광활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 바다는 마치 생명이 태어난 아득한 기원을 떠올리게 하고, 인간의 몸속에 새겨진 오랜 진화의 역사를 상상하게 합니다.

하얀 사슴이 내려와 물을 마셨다는 전설을 간직한 백록담의 거대한 화산 분화구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라산의 화산지형과 풍부한 생물다양성은 제주도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인정받은 중요한 자연적 가치이기도 합니다.1

지리산이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과 깊은 계곡으로 장대함을 드러낸다면, 한라산은 바다 위에 홀로 솟아오른 화산의 웅장함과 독특한 생태계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어느 산이 더 아름답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함께 걷던 두 중년 여인 가운데 몽블랑과 몽골의 광활한 대지를 걸어본 노련한 산행인은 한라산의 또 다른 매력을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다양한 식생이었습니다.

그녀는 한라산의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와 풀,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숲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치 식물학자가 자연의 생태를 설명하듯, 그녀의 말에는 오랜 산행에서 얻은 관찰과 경험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한라산과 지리산은 모두 해발 1,900m를 넘는 높은 산인데, 두 산이 품은 식물의 세계는 어떻게 다를까요?

여기서 잠시 두 산의 식생을 살펴보겠습니다.

한라산과 지리산은 모두 해발 1,900m를 넘는 높은 산입니다. 그러나 두 산이 품고 있는 식물의 세계는 사뭇 다릅니다.

그 차이는 단순히 산의 높이나 지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두 산이 자리한 지리적 위치와 기후, 토양,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생태적 역사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라산은 바다 한가운데 솟아오른 화산입니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으며,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내려가고 식생이 달라집니다.

산기슭의 따뜻한 저지대에는 구실잣밤나무와 종가시나무 같은 상록활엽수가 자라고, 중산간으로 올라가면 서어나무와 졸참나무 등의 낙엽활엽수가 숲을 이룹니다. 더 높은 곳에서는 구상나무와 주목 등 추운 환경에 적응한 나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불과 몇 시간의 산행으로 따뜻한 남쪽 지방의 숲에서 차가운 고산지대의 식생까지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라산 식생의 특별한 매력입니다.

반면 지리산은 백두대간에서 이어지는 거대한 산악 생태계의 일부입니다.

한라산이 하나의 거대한 화산체를 중심으로 수직적인 생태적 변화를 보여준다면, 지리산은 수많은 봉우리와 계곡, 능선이 만들어 낸 복잡한 지형 속에서 다양한 식물들이 살아갑니다.

지리산의 중산간에는 신갈나무를 비롯한 낙엽활엽수림이 넓게 분포하고, 고도가 높은 능선에는 구상나무와 철쭉, 털진달래 등 추위와 강풍에 적응한 식물들이 자랍니다.

특히 노고단과 세석평전 일대의 아고산 식생은 지리산이 품은 또 하나의 독특한 생태적 풍경입니다.

두 산의 차이를 굳이 비유하자면, 한라산은 고도에 따라 서로 다른 생명의 세계가 층층이 펼쳐지는 산이고, 지리산은 수많은 능선과 계곡이 서로 다른 생명의 세계를 이어주는 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한라산에도 깊은 계곡과 다양한 미세환경이 있으며, 지리산에서도 고도에 따른 식생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두 산의 높은 지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는 한반도와 제주도의 산악 생태계를 대표하는 한국 특산 침엽수입니다. 추운 환경에 적응한 이 나무는 오늘날 기후변화와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수백 년에 걸쳐 산을 지켜온 나무들이 불과 몇십 년 사이에 빠르게 쇠퇴하는 현실은 자연이 결코 영원불변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산은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안에 깃든 생명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산을 정복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정상에 오르기 훨씬 이전부터 그곳에는 수많은 생명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작은 풀 한 포기와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는 구상나무 한 그루에도 오랜 진화의 역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산행은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일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자연이 만들어 낸 생명의 세계를 잠시 지나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동행한 여인이 한라산의 식생을 이야기하던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산의 높이나 등산로의 난이도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산을 오르며 만났던 나무와 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숲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산은 다양한 생명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라산에는 한라산의 생명이 있고, 지리산에는 지리산의 생명이 있습니다.

어느 산이 더 아름답고 웅장한가를 가리는 일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자연이 각자의 방식으로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의 한가운데를 걷는 인간 역시 그 생명들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남편은 등산화도 신지 않았고, 아내는 소박한 일상복 차림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오랜 세월 지리산을 오르내린 이들이었습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세월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무려 2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지리산을 찾을까요?”

한번 오면 다시 오고 싶은 산,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산,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산이라는 뜻에서 지리산이라고.

익숙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사실 이런 표현들은 새롭지 않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리산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입과 글을 통해 되풀이되어 온 말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그토록 식상한 이야기를 우리는 마치 처음 발견한 진실처럼 진지하게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자신의 삶을 털어놓듯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삶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었습니다.

3년 전 홀로 지리산을 종주할 때도 그랬습니다.

장터목과 벽소령 사이에서 만난 단 한 사람. 낯선 산길에서 사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30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도시에서는 무심히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이 산에서는 서로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산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어쩌면 지리산의 매력은 산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잠시 허물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부부의 아내는 저를 붙잡아두려 하고, 저 또한 그러고 싶은데 남편분이 길을 재촉합니다. 그렇게 산에서의 아쉬움은 기억이 됩니다.

선생님을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능선을 오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지리산은 아름다운 자연의 공간인 동시에 우리 현대사의 깊은 상처를 간직한 곳입니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은 이념의 대립과 국가폭력이 교차했던 비극의 현장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신념의 공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공간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무덤이었습니다.

그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이 걸어가는 지리산은 대결과 증오의 장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의 산이어야 합니다.

물론 이 또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리산을 찾은 사람들의 입과 글을 통해 숱하게 회자되어 온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되풀이해서 말해야 합니다.

“서로를 밀어내는 경쟁보다 함께 걷는 연대의 가치를 배우고, 인간뿐만 아니라 지리산에 깃든 수많은 생명과 공존하는 법을 익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선생님을 따라 산길을 오르는 아이들은 서로의 걸음에 맞추고, 뒤처지는 친구를 기다리며, 함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경쟁보다 협력의 의미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직접 밥을 지어 함께 먹고 나누는 경험은 공유의 도덕률을 배우는 과정이며, 그것이 아이들의 연대로 이어지는 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리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자연의 장엄함만이 아닐 것입니다.

각자의 삶을 짊어진 사람들이 잠시 동행하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본질과 공존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저마다의 다른 삶

우리는 모두 다른 곳에서 출발했습니다.

살아온 시대도 다르고, 걸어온 길도 다르며,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도 다릅니다.

누군가는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생각합니다.

산길에서 사람들은 말없이 걷지만, 그 침묵 속에는 세상에서 미처 내려놓지 못한 수많은 생각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요?

저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타인의 삶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마다 견뎌온 시간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산은 인간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삶의 의미를 대신 찾아주지도 않습니다.

다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씩 오르는 동안, 우리는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잠시 사소해지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삼 소중해진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나눈 이야기와 짧은 만남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3박 4일, 38km.

나는 지리산 능선을 걸었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내 기억을 지리산에 남겨놓습니다. 다음을 위해서. (끝)


  1. 이에 대해서는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였습니다.
    ↩︎
  2. 본문의 식생 설명은 지리산 노고단·세석평전의 식생 조사와 국립산림과학원의 구상나무 연구를 참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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