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의 유전적 적응에 관한 진화생물학적 분석

요약

제주 해녀의 뛰어난 잠수 능력은 단순히 타고난 유전자만으로도, 오랜 훈련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제주라는 섬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무호흡 잠수라는 생업은 한편으로는 제주인 집단에 자연선택의 흔적을 남겼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 사람의 생애 동안 심장과 혈관의 생리적 반응을 변화시켰다.

2025년 Cell Reports에 발표된 제주 해녀 연구는 바로 이 두 가지 시간을 구분하여 보여준다.

연구진은 제주인에게서 이완기 혈압과 관련된 자연선택의 흔적을 발견하는 한편, 해녀가 잠수할 때 나타내는 강한 서맥은 오랜 훈련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제주 해녀는 그런 의미에서 유전적 진화와 생리적 가소성, 환경과 문화가 한 인간 집단 안에서 어떻게 만나는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제주해녀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와 보존 필요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출처: 동심헌)


1. 서론

제주 해녀는 오랫동안 제주 바다에서 별도의 호흡 장비 없이 잠수하여 전복, 소라, 성게와 같은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아온 여성 공동체다.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 기록에 따르면, 해녀에게 바다는 단순한 노동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터전이면서 여성들이 지식과 기술을 전승하고 공동체를 형성해온 문화적 공간이었다.

해녀의 물질은 인간에게 상당한 생리적 부담을 준다. 숨을 참으면 혈중 산소가 감소하고 이산화탄소가 증가한다. 차가운 물은 열 손실을 증가시키며, 잠수 과정에서는 심혈관계에도 지속적인 부담이 가해진다. 특히 과거의 해녀들은 임신 중에도 물질을 지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러한 환경이 여성의 생존과 생식에 어떤 선택압을 주었는가는 진화생물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문제다. 연구 논문 역시 해녀가 임신 기간에도 잠수를 계속해온 전통에 주목한다.

2025년 Diana Aguilar-Gómez와 Melissa Ilardo 등이 Cell Reports에 발표한 「Genetic and training adaptations in the Haenyeo divers of Jeju, Korea」는 이 문제를 처음으로 유전체와 생리학을 함께 이용하여 분석했다.1 연구진은 제주 해녀 30명, 제주 비해녀 30명, 육지 비해녀 31명을 모집하고 심혈관 반응과 비장 크기 등을 측정했으며, DNA 상태가 적합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전장유전체 분석도 실시했다.2

이 연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뜻밖에도 단순하다.

해녀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특성이 유전적인 것도 아니며, 모든 것이 훈련의 결과인 것도 아니다.

해녀의 몸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적응이 겹쳐 있다.


2. 유전형, 환경압력, 그리고 지역 적응의 경로

표현형(phenotype)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실제로 나타나는 생물학적 특성을 뜻한다. 키, 혈압, 체온조절 능력과 같은 신체적 특징뿐 아니라 특정 자극에 대한 생리적 반응도 표현형에 포함된다.

유전형(genotype)은 그 표현형의 한 기반을 이루는 DNA의 유전적 구성을 뜻한다. 그러나 하나의 표현형이 언제나 하나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혈압이나 운동능력처럼 복잡한 형질은 수많은 유전적 변이와 환경이 함께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유전적 변이 가운데 하나가 단일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이다. SNP는 DNA의 특정 위치에서 한 염기가 다른 염기로 나타나는 흔한 유전적 차이다. 대부분의 SNP는 특별한 기능적 차이를 만들지 않지만, 일부는 단백질 기능이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고 특정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해녀 연구에서 특히 중요한 표현형은 잠수 반응(diving response)이다.

사람이 숨을 참고 얼굴을 차가운 물속에 넣으면 심박수가 느려지는 서맥(bradycardia)이 나타나고 말초 혈관은 수축한다. 그 결과 피부와 팔다리로 가는 혈류가 줄고 뇌와 심장처럼 산소가 반드시 필요한 장기로 혈액이 집중된다. 이것은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잠수 반사다.

그러나 제주 해녀에게서는 이 반응이 특히 강했다.

연구진이 실시한 모의 잠수 실험에서 해녀의 심박수는 평균 약 18.8bpm감소한 반면, 같은 제주 출신 비해녀 여성은 약 12.6bpm감소했다. 더욱 흥미롭게도 해녀의 평균 숨참기 시간은 약 27초로 제주 비해녀의 약 39초보다 오히려 짧았다. 그런데도 해녀의 심박수 감소는 더 컸다.

그렇다면 이것은 해녀만이 가진 특별한 유전자 때문일까?

연구진의 결론은 달랐다.

유전체 분석에서 해녀와 제주 비해녀 사이에는 의미 있는 집단유전학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 두 집단의 $F_{ST}$는 약 0.00031로 매우 낮았다. 연구진은 해녀와 제주 비해녀가 사실상 동일한 조상 집단에서 나온 거의 무작위 교배 집단(panmictic population)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해녀에게서 특별히 강하게 나타난 서맥은 유전적 차이라기보다 수십 년 동안 반복한 잠수 훈련이 만들어낸 생리적 가소성(physiological plasticity)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분이다.

유전적 적응은 세대를 거쳐 자연선택이 만든 변화이고, 훈련 적응은 한 사람의 생애 동안 몸이 경험에 반응하여 변화한 것이다.


이번 제주 해녀 연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rs66930627이라는 SNP와 SGCZ 유전자 영역이다.

① rs66930627 ― 이완기 혈압과 자연선택
연구진은 제주인에게서 자연선택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후보 변이들을 찾은 뒤 잠수 중 이완기 혈압과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통계적 기준을 통과한 변이가 rs66930627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rs66930627은 특정 단백질을 직접 암호화하는 하나의 ‘해녀 유전자’가 아니다. 유전자와 유전자 사이의 영역(intergenic region)에 존재하는 SNP이며, 여러 주변 유전자의 발현 수준과 연관된 eQTL(expression quantitative trait locus)로 알려져 있다. 특히 FcγRIIA, FCRLB, HSPA7 등의 발현과 연관된다.

rs66930627의 C 대립유전자 빈도는 제주 집단에서 약 33%, 한반도 본토 집단에서 약 7%였다. 제주 연구 표본에서는 이 C 대립유전자 하나가 증가할 때 잠수 중 이완기 혈압이 약 10mmHg낮아지는 것과 연관되었다. 다만 다른 유전적 배경을 가진 미국 All of Us 유럽계 표본에서는 효과 크기가 약 0.75mmHg로 훨씬 작았다. 따라서 10mmHg라는 수치를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제주인 전체의 이완기 혈압이 서울 참가자보다 대체로 약 10mmHg높았다는 점이다. 이는 해녀에게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제주 비해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여기서 하나의 진화적 가설을 제시한다.

잠수할 때 혈압의 상승은 뇌 혈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임신한 여성에게 지나친 이완기 혈압 상승은 전자간증 등 임신 합병증의 위험과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임신 중에도 잠수했던 여성들에게 과도한 이완기 혈압 상승을 완충하는 변이가 선택상의 이익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모델에서는 rs66930627의 C 대립유전자에 대한 강한 선택이 약 1,2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모델이 가장 적합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역사적 시점을 직접 측정한 것이 아니라 집단유전학 모델에 따른 추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② SGCZ ― 추위 적응의 후보

또 하나의 흥미로운 선택 신호는 SGCZ(sarcoglycan zeta) 유전자 영역에서 나타났다.

SGCZ 변이는 과거 대규모 연구에서 손을 얼음물에 넣어 통증 민감성을 평가하는 cold pressor test의 수행 결과와 연관된 바 있다. 제주 해녀가 겨울에도 차가운 바닷물에서 오랜 시간 물질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연구진은 SGCZ의 선택 신호가 추위 내성과 관련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이번 연구는 해녀의 체온조절 능력을 직접 측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SGCZ가 해녀의 저체온 내성을 만들어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자연선택의 흔적과 기존의 냉수 통증 연구를 연결한 유력한 후보 가설이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집단유전학적 결과는 ‘해녀’라는 직업 집단이 제주 안에서 별도의 유전집단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녀와 제주 비해녀의 유전적 차이는 매우 작았다. 반면 제주인 전체는 한반도 본토 표본과 일정한 유전적 차이를 나타냈다. 연구진은 제주와 본토 집단의 인구사적 궤적이 약 5,000~7,000년 전부터 뚜렷하게 갈라진 것으로 추정했으며, 약 1,200~3,000년 전에는 제주 집단의 유효집단크기가 크게 감소한 병목의 흔적도 발견했다. 다만 이러한 연대는 인구사 모델의 가정에 의존하는 추정값이다.

따라서 ‘해녀 유전자’라는 표현은 편리하지만 엄밀하게 사용해야 한다.

rs66930627과 같은 변이는 현대 해녀에게만 존재하는 유전변이가 아니라 제주인 전체에서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변이다.

연구진이 지적했듯이 오늘날 제주 비해녀의 조상 가운데에도 과거 잠수에 참여했던 여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오랜 세월 동안 잠수라는 문화가 제주인 전체의 유전자 풀에 선택압을 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더 정확한 표현은 ‘해녀 유전자’보다는 ‘제주 집단에서 잠수 생활과 관련하여 자연선택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유전적 변이’이다.


자연선택은 어떤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적 변이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집단에서 더 높은 빈도를 갖게 되는 과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유전자가 환경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집단 안에는 원래 다양한 유전적 변이가 존재하며, 그 가운데 특정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변이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후손을 남기면 그 변이의 빈도가 세대를 지나면서 변화한다.

제주인의 rs66930627 C 대립유전자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제주에서 약 33%, 본토에서 약 7%라는 빈도 차이와 독립적인 자연선택 분석을 함께 고려할 때 연구진은 이 변이가 제주 집단에서 비교적 최근 강한 자연선택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의 지역 적응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가 여럿 있다.

티베트 고산인의 EPAS1 계열 변이는 낮은 산소 농도에서도 헤모글로빈 농도를 지나치게 높이지 않는 방향의 고산 적응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PPARA와 EGLN1 역시 티베트인의 고산 저산소 환경 적응과 관련된 자연선택 후보로 보고되었다.

말라리아가 흔한 지역에서 HBB 유전자의 겸상적혈구 변이는 이형접합 상태에서 중증 말라리아에 대한 보호 효과를 제공하면서 높은 빈도로 유지될 수 있다. 목축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된 일부 집단에서는 성인기에도 락타아제를 발현하는 변이가 증가했고, 이는 인간의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제주 해녀 연구가 던지는 핵심 질문도 분명하다.

문화가 오랫동안 특정 환경을 만들어낸다면, 그 문화 자체가 자연선택의 환경이 될 수 있는가?

해녀의 물질이 수많은 세대 동안 생존과 생식에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면 답은 ‘그럴 수 있다’이다.


제주 해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비교 대상이 동남아시아의 바자우(Bajau)다.

바자우족 역시 오랫동안 무호흡 잠수로 수중에서 먹을 것을 채취해온 집단이다. 2018년 Cell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바자우족의 비장이 인근 비잠수 집단보다 평균적으로 약 50% 크다는 사실과 함께, PDE10A 유전자 주변의 자연선택 신호가 큰 비장과 연관될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연구진은 BDKRB2에서도 잠수 반응과 관련될 수 있는 선택 신호를 발견했다.

비장은 잠수할 때 수축하면서 저장하고 있던 적혈구를 혈액으로 내보낼 수 있다. 따라서 비장이 크면 무호흡 상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산소 저장 능력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제주 해녀에게서 같은 현상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제주 연구에서도 비장 크기를 측정했지만 해녀와 제주 비해녀 사이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제주인 두 집단의 비장이 서울 참가자보다 커 보였으나 키, 체중, 나이 등의 변수를 보정하면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명확하지 않았다.

따라서 제주 해녀와 바자우를 동일한 유전적 수렴진화의 사례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두 집단은 모두 무호흡 잠수라는 비슷한 환경압력에 노출되었지만, 바자우에서는 큰 비장과 PDE10A가 중요한 후보로 나타난 반면, 제주에서는 이완기 혈압과 연관된 rs66930627 및 추위 적응 가능성을 가진 SGCZ 등이 주목된다.

즉, 자연선택은 같은 문제에 언제나 같은 유전적 해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바다는 비슷한 질문을 던졌지만, 두 인간 집단의 진화는 서로 다른 답을 찾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해녀 문화가 쇠퇴한다고 해서 제주인에게 현재 존재하는 rs66930627이나 SGCZ의 특정 변이가 곧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변이는 문화가 중단되는 순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진화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어떤 유전적 변이가 특정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에 자연선택을 받아왔다면, 그 환경이 사라질 경우 그 변이에 작용했던 선택압(selection pressure) 역시 약해질 수 있다.

잠수가 더 이상 생계와 생식 성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잠수에 유리했던 유전적 특성이 과거와 같은 선택상의 이익을 제공할 이유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그 유전형이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후의 빈도 변화에는 다른 자연선택, 인구 이동, 짝짓기 구조, 우연한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해녀 문화의 소멸을 곧 ‘해녀 유전자의 소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

문화가 자연선택의 환경을 만들었다면, 문화의 소멸은 그 선택 환경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 해녀는 단순히 한 직업 집단의 역사가 아니다. 인간이 만든 문화적 행동이 수백 년, 어쩌면 더 긴 시간 동안 생물학적 진화와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문화와 환경이 인간의 생물학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 자연선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선택이 여러 세대에 걸쳐 특정 유전적 변이의 빈도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라면, 한 개인의 생애에서도 환경과 경험은 DNA 염기서열 자체를 바꾸지 않은 채 유전자의 발현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또 하나의 시간축이 등장한다. 제주 해녀의 오랜 물질이 실제로 어떤 후성유전적 변화를 남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환경과 경험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생물학적 원리는 해녀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교보문고에서 ‘후성유전학’을 검색하면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유전자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쉽게 쓴 후성유전학』 등이 나온다. 그중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앞의 두 권이다. 물론 『이보디보』, 도 갖고 있다.


앞의 책 갤러리에서 소개한 『유전자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와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환경과 경험은 DNA 염기서열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서 어떻게 유전자의 작동 방식을 변화시키는가. 그 답은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정교한 유전자 조절 과정에 있다. 그 대표적인 분자 기전이 DNA 메틸화, 히스톤과 염색질의 변형, 비암호화 RNA의 작용이다.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비암호화 RNA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는 같은 DNA 염기서열을 가진 상태에서도 유전자의 활성 상태가 비교적 지속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현상과 그 분자적 기제를 연구하는 분야다.

즉 A, T, C, G라는 유전정보의 글자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포가 그 정보 가운데 어느 부분을 언제, 얼마나 읽을 것인가를 조절하는 것이다.

‘에피(epi-)’는 그리스어로 ‘위에’, ‘~에 더하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문자 그대로 ‘유전자 위에서 명령하는 또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후성유전적 조절은 DNA와 단백질, RNA가 함께 형성하는 복잡한 유전자 발현 조절 체계의 한 층위다.

여기서 앞에서 살펴본 SNP와 에피제네틱스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는 DNA 염기서열의 특정 위치에서 하나의 염기가 다른 염기로 나타나는 유전적 변이다. 이러한 변이는 생식세포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으며, 특정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준다면 자연선택에 의해 집단의 대립유전자 빈도가 세대를 거치며 달라질 수 있다.

반면 에피제네틱 조절에서는 DNA의 기본 염기서열이 그대로 유지된다. 대신 DNA와 이를 둘러싼 염색질의 화학적·구조적 상태가 달라지면서 유전자의 발현 가능성이 변한다.

비유하면 SNP가 ‘무엇이 쓰여 있는가’의 차이라면, 에피제네틱 조절은 ‘쓰여 있는 정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차이에 가깝다.

운동, 영양, 스트레스와 같은 환경 요인이 여러 조직에서 DNA 메틸화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운동에 따라 골격근의 DNA 메틸화 양상이 변화하는 현상도 이러한 환경 반응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주의점이 있다.

한 개인의 체세포에서 생긴 후성유전적 변화가 그대로 자녀와 손자에게 전달된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포유류에서는 생식세포가 형성되는 과정과 수정 후 초기 배아 발생 과정에서 광범위한 후성유전적 재설정이 일어난다. 따라서 인간에서 환경에 의해 획득된 후성유전적 변화가 여러 세대를 넘어 안정적으로 전달되는 초세대 후성유전은 아직 제한적인 증거만 존재하며 논쟁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초세대 전승이 아직 논쟁적이라는 사실과, 한 세포와 한 개체 안에서 후성유전적 조절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다. DNA 메틸화와 히스톤 변형을 비롯한 후성유전적 기전이 세포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는 사실 자체는 확립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절은 세포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질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유전자의 전사가 시작되는 프로모터(promoter)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전자 프로모터와 후성유전 조절

프로모터는 유전자의 전사가 시작되는 지점 주변에 위치하는 DNA 조절 영역이다. RNA 중합효소와 여러 전사인자가 이 부근에 모여 DNA에 기록된 유전정보를 RNA로 옮겨 적는 전사(transcription)를 시작한다.

따라서 프로모터는 단순한 전사의 출발점이라기보다 유전자를 언제, 어느 정도 읽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절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일부 프로모터에는 TATA box나 GC box 같은 특정 조절서열이 존재하지만 모든 진핵세포 유전자가 TATA box를 가지는 것은 아니며, 프로모터의 구조는 유전자마다 상당히 다양하다.

이제 후성유전적 조절의 첫 번째 기전을 살펴보자.

첫째, DNA 메틸화(DNA methylation)다.

포유류의 DNA 메틸화는 주로 시토신(C), 특히 CpG 서열의 시토신에 메틸기 $-\mathrm{CH_3}$가 붙는 화학적 변형이다. 메틸기는 탄소 1개와 수소 3개로 이루어진 작은 작용기지만, 그 위치에 따라 유전자 발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프로모터 주변의 CpG가 높은 수준으로 메틸화되면 많은 경우 전사가 억제된다. 메틸화가 일부 전사인자의 결합을 직접 방해하기도 하고, 메틸화된 DNA를 인식하는 단백질과 억제성 염색질 복합체를 불러들여 DNA를 전사하기 어려운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그 결과 DNA 속에 유전자는 그대로 존재하지만 기능적으로 잘 읽히지 않는 침묵(silencing) 상태가 될 수 있다. 비유하면 유전자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문이 닫히는 것이다.

암세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종양억제유전자의 프로모터가 비정상적으로 과메틸화되면 해당 유전자의 발현이 감소하고, 그 결과 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을 억제하는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

다만 DNA 메틸화 = 유전자 억제라는 단순한 등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메틸화가 프로모터에 있는지, 유전자 몸체(gene body)나 다른 조절 영역에 존재하는지에 따라 생물학적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DNA 메틸화가 DNA 자체의 화학적 상태를 변화시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면, 또 다른 조절은 DNA를 감싸고 있는 단백질과 염색질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둘째, 히스톤 변형(histone modification)이다.

사람의 DNA는 세포핵 안에서 히스톤 단백질에 감겨 뉴클레오솜을 형성한다. 히스톤의 특정 아미노산에 아세틸기나 메틸기 등의 화학적 표지가 붙으면 주변 염색질의 구조와 다른 단백질이 결합할 수 있는 조건이 변화한다.

일반적으로 히스톤 아세틸화는 염색질을 비교적 열린 상태로 만드는 것과 연관되어 전사를 촉진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히스톤 메틸화는 어느 아미노산의 어느 위치가 변형되는지에 따라 전사를 촉진하기도 하고 억제하기도 한다.

따라서 히스톤 변형은 단순한 ON/OFF 스위치라기보다 여러 화학적 표지가 조합되어 유전자의 접근 가능성을 조절하는 정교한 체계에 가깝다.

그러나 유전자 발현은 DNA와 히스톤의 상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만들어진 RNA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고, 얼마나 번역되며, 다른 유전자 조절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는가도 중요한 조절 층위다.

셋째, 비암호화 RNA(non-coding RNA)다.

모든 RNA가 단백질의 설계도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miRNA, siRNA, lncRNA와 같은 비암호화 RNA 가운데 일부는 표적 mRNA의 안정성과 번역을 조절하고, 일부는 염색질 조절 복합체와 상호작용하여 특정 유전자 영역의 활성 상태에 영향을 준다.

여기서도 한 가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모든 비암호화 RNA가 곧 후성유전 기전인 것은 아니다. 비암호화 RNA는 매우 넓은 범주의 RNA이며, 그 가운데 일부가 염색질 상태와 지속적인 유전자 발현 조절에 관여하면서 후성유전적 기능을 수행한다.

결국 DNA 메틸화, 히스톤과 염색질의 변형, 일부 비암호화 RNA는 서로 완전히 독립된 세 개의 장치라기보다 하나의 복잡한 유전자 조절망 안에서 상호작용한다. DNA 메틸화는 DNA의 화학적 상태를 바꾸고, 히스톤 변형은 염색질의 접근성을 조절하며, 일부 비암호화 RNA는 전사 이후의 RNA를 조절하거나 염색질 조절 과정 자체에 관여한다.


3. 그렇다면 제주 해녀의 몸에도 후성유전적 흔적이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무호흡 잠수, 차가운 바닷물에 대한 노출, 장시간의 신체 활동은 해녀의 몸에 강력하고 반복적인 환경 자극이다. 다른 종류의 운동이 근육 등 여러 조직에서 DNA 메틸화와 유전자 발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해녀의 장기간 잠수 훈련 역시 어떤 후성유전적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그것은 가설이다.

2025년 제주 해녀 연구는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또는 miRNA를 측정한 후성유전체 연구가 아니다. 따라서 ‘해녀의 물질이 PPARA 프로모터의 메틸화를 감소시켰다’, ‘PDE10A 주변 히스톤을 변형시켰다’, ‘특정 miRNA가 산소 소비를 줄였다’고 말할 직접적인 근거는 현재 없다.

이러한 가능성을 확인하려면 해녀와 같은 연령의 제주 비해녀를 비교하고, 혈액뿐 아니라 실제 잠수 적응에 중요한 골격근 등 적절한 조직에서 DNA 메틸화, 염색질 접근성, 히스톤 변형, RNA 발현 등을 분석해야 한다. 또한 잠수 경력과 변화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현재의 과학이 말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문장은 이것이다.

제주 해녀에게 후성유전적 잠수 적응이 존재할 가능성은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지만, 아직 그것이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가능성을 사실로 바꾸는 것이 과학이 아니라, 가능성과 사실 사이에 선을 긋고 그 선을 실험으로 하나씩 넘어가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4. 결론

제주 해녀의 몸에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흔적이 겹쳐 있다.

하나는 세대의 시간이다.

제주인 집단의 유전체에는 본토 집단과 다른 인구사와 자연선택의 흔적이 남아 있다. rs66930627의 C 대립유전자는 제주에서 약 33%, 본토에서 약 7%의 빈도로 나타났고, 잠수 중 이완기 혈압을 낮추는 것과 연관되어 있었다. SGCZ 영역에서도 자연선택의 신호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차가운 물에 대한 적응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른 하나는 한 인간의 생애라는 시간이다.

해녀는 같은 제주 집단의 비해녀보다 잠수할 때 훨씬 강한 서맥을 보였다. 해녀와 제주 비해녀 사이에 뚜렷한 유전적 분화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차이는 평생에 걸친 반복적인 물질이 심혈관계에 남긴 훈련 효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그리고 그 두 시간을 이어주는 것이 문화다.

해녀라는 문화가 없었다면 수많은 여성이 어린 시절부터 바다에 들어가 무호흡 잠수를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신 중에도 바다로 들어가는 생활이 수많은 세대에 걸쳐 지속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화는 사람의 DNA를 의도적으로 바꾸지는 않지만, 어떤 유전적 변이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가를 결정하는 환경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 해녀는 유전자와 문화가 서로 독립된 두 세계가 아님을 보여준다.

문화는 환경을 만들고, 환경은 몸을 바꾸며, 충분히 긴 시간이 흐르면 그 환경은 자연선택을 통해 집단의 유전자 빈도에도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유전자 결정론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해녀의 놀라운 잠수성 서맥은 바로 그 경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특별한 ‘해녀 유전자’ 하나가 만들어낸 능력이 아니라, 한 인간이 수십 년 동안 바다와 부딪치며 자신의 생리를 바꾸어온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해녀의 몸에는 두 개의 시간이 겹쳐 있다. 하나는 수많은 세대에 걸쳐 제주인 집단의 유전체에 남은 자연선택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한 해녀가 수십 년 동안 바다에 몸을 담그며 심장과 혈관에 새긴 훈련의 시간이다. 그 두 시간을 이어준 것은 제주 바다와 ‘물질’이라는 문화였다.

해녀 문화가 사라진다고 제주인의 특정 유전적 변이가 곧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변이에 선택상의 의미를 부여했던 독특한 환경은 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해녀 문화의 보존은 오래된 직업 하나를 지키는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의 문화와 환경과 몸, 그리고 진화가 어떻게 서로 얽혀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역사를 보존하는 일이기도 하다. (끝)


※ 주(註)

  1. 제주 해녀의 유전적·훈련 적응에 관한 연구

    Diana Aguilar-Gómez et al., Genetic and training adaptations in the Haenyeo divers of Jeju, Korea, Cell Reports, Vol. 44, Issue 5, Article 115577, 2025. 연구는 해녀의 강한 잠수성 서맥을 주로 훈련 효과로 해석하고, 제주 집단에서 이완기 혈압과 관련된 자연선택 변이 및 추위 내성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는 선택 신호를 보고했다.

    이 연구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제주 해녀와 제주 비해녀를 서로 다른 유전집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집단의 $F_{ST}$는 약 0.00031이었고, 연구진은 제주 집단을 거의 하나의 panmictic population으로 해석했다. 반면 제주 집단과 본토 한국인의 $F_{ST}$는 약 0.0034였다.

    연구의 핵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해녀의 잠수성 서맥은 장기간의 훈련 효과일 가능성이 높으며, rs66930627의 C 대립유전자는 제주에서 높은 빈도로 나타나고 이완기 혈압 감소와 연관되었다. SGCZ에서는 자연선택의 흔적이 발견되어 추위 적응 가능성이 제시되었지만 직접적인 체온조절 실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해녀와 제주 비해녀 사이에서 비장 크기의 유의한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
  2. 연구 결과는 우리나라 주요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경향신문 「여적」은 연구진의 표현을 인용해 “해녀들의 놀라운 잠수 능력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 문장은 『Cell Reports』 논문 본문의 결론문이 아니라, Cell Press의 보도자료에서 연구자 멜리사 일라도(Melissa Ilardo)가 한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보도자료 역시 해녀의 잠수 능력이 유전적 적응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훈련과 유전적 적응 모두”와 관련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논문의 결과는 이보다 조금 더 복합적이다. 제주 집단에서는 잠수 환경에 대한 적응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는 자연선택의 유전적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해녀에게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잠수성 서맥은 해녀와 제주 비해녀 사이의 유전적 차이 때문이라기보다 평생에 걸친 반복적인 잠수 훈련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연구진의 해석이다.

    따라서 “해녀의 잠수 능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 표현은 연구의 한 측면을 강조한 말이며, 논문의 전체 결론은 유전적 적응과 훈련에 따른 생리적 가소성이 함께 작용한다는 데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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