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의 은하년, 그리고 찰나를 사는 우리

요약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우리는 한 살을 먹습니다.

그러나 태양도 우리 은하의 중심을 공전하며, 그 한 바퀴에는 약 2억 3,000만 년이 걸립니다. 공룡이 처음 등장하던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태양은 은하를 겨우 한 바퀴 돌았습니다.

약 46억 년 전에 탄생한 태양은 지금까지 20번의 은하 여행을 마쳤고, 적색거성으로 진화하기까지 약 22번의 여행을 더 이어갈 것입니다.

이 장대한 우주의 시간 앞에서 인간의 80년 생애는 지구의 하루로 압축하면 불과 0.03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찰나의 시간에도 우리는 짧은 기쁨과 긴 슬픔을 겪고, 순간의 사랑과 기나긴 상실을 견디며, 덧없는 희망과 끝없는 좌절 사이를 오가며 세상의 의미를 묻다가 사라집니다.

우주의 시간에서는 1초도 흐르지 않았지만, 그 순간은 우리에게 하나의 온전한 생애였습니다.

우리 삶의 참된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며, 그 찰나를 온전히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우주의 만물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태양이 떠오르면 아침이 오고, 태양이 지면 하루가 저문다고 생각합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깊어지면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그렇게 하루가 쌓여 한 해가 되고, 한 해가 쌓여 한 사람의 생애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존재처럼 여기는 태양도 실은 끝없는 우주를 여행하는 하나의 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구는 시속 약 10만 7,000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달립니다.

우리는 그 거대한 움직임을 느끼지 못한 채 계절을 맞이하고, 사랑을 나누고, 늙어갑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우리는 한 살을 더 먹고, 삶의 기억에는 또 하나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그런데 “우주의 만물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별도 예외가 아닙니다.”

태양은 은하 중심에서 약 2만 6,000광년 떨어진 오리온자리 가지에 자리하며, 지구와 태양계의 행성들을 거느리고 약 2억 3,000만 년에 한 번씩 은하 중심을 공전합니다. 그림은 은하 중심의 막대 구조와 주요 나선팔, 태양의 위치를 재구성한 개념도입니다.(

태양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태양은 수많은 별과 함께 우리 은하의 중심을 공전하며 시속 약 82만 8,000km의 속도로 여행합니다. 태양이 은하 중심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억 3,000만 년입니다. 천문학자들은 이 장대한 시간의 단위를 ‘은하년’(Galactic Year)이라고 부릅니다.

태양이 은하를 한 바퀴 마칠 즈음

태양에게도 한 해가 있는 셈입니다.

태양이 마지막으로 은하의 한 바퀴를 마쳤을 무렵,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에서는 최초의 공룡들이 모습을 드러내던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와 만납니다.

그 후 거대한 지구의 대륙은 갈라지고 이동했으며, 바다는 열리고 닫혔습니다. 산맥이 솟아올랐고,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낮아졌습니다. 숱한 생명들이 태어나 번성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지구의 역사가 펼쳐지는 동안, 태양은 은하의 중심을 겨우 한 바퀴 돌았을 뿐입니다.

약 46억 년 전, 우주의 가스와 먼지가 중력에 이끌려 하나의 별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태양입니다. 태양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은하를 약 스무 바퀴 돌았습니다.

스무 번의 은하년.

그 사이 지구가 탄생했고, 바다가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생명이 출현했습니다. 단순한 세포에서 복잡한 생명으로, 바다에서 육지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존재와 우주의 기원을 묻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역사는 태양이 은하를 스무 바퀴 도는 동안 펼쳐졌습니다.

태양이 남은 은하 여행: 약 스물두 바퀴

그러나 태양의 시간도 무한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태양이 앞으로 약 50억 년 동안 중심핵에서 수소 핵융합을 지속한 뒤, 거대한 적색거성으로 팽창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이후 태양은 외곽층을 우주 공간으로 방출하고, 남은 중심핵은 백색왜성이 되어 서서히 식어갈 것입니다.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기까지 남은 약 50억 년을 현재의 은하 공전주기로 환산하면 약 스물두 바퀴입니다.

태양에게 남은 은하년은 스물두 번인 셈입니다.

물론 그것은 인간의 시간이 아닙니다. 태양의 한 해는 우리의 2억 3,000만 년입니다. 인간에게 영원처럼 느껴지는 50억 년도 은하의 시계로 헤아리면 스물두 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시간

이 거대한 시간의 척도 앞에서 인간의 역사는 얼마나 짧은 것일까요.

인류가 도시를 세우고 문명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입니다. 문자를 만들고, 국가를 세우고, 전쟁을 치르고, 자유와 평등을 꿈꾸며, 마침내 우주의 탄생과 별의 죽음을 설명하기 시작한 그 모든 역사는 은하년 한 번의 0.00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영원할 것처럼 다투고, 평생을 바쳐 추구하는 부와 권력, 명예와 성공도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찰나에 스쳐 가는 흔적일 뿐입니다. 칼 세이건은 이를 두고 자신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 (현정준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 26쪽)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우주는 약 138억 년의 시간을 지나며 별을 만들고, 별의 내부에서 생명의 재료가 될 원소들을 빚어냈습니다. 오래된 별들이 죽으며 흩뿌린 물질은 다시 새로운 별과 행성을 이루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태양과 지구입니다.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쳐 약 30만 년 전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이루는 원자들은 오래된 우주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별들이 남긴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우리의 의식은 그 물질이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낸 경이로운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와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주의 물질이 생명의 형태를 이루고,  생명은 자신을 낳은 우주를 바라봅니다.

우리의 일생은 태양의 한 해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히 짧은 순간입니다. 우리는 광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잠시 주어진 자신의 생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그 찰나의 시간에도 우리는 짧은 기쁨과 긴 슬픔을 겪고, 순간의 사랑과 기나긴 상실을 견디며, 덧없는 희망과 끝없는 좌절 사이를 오갑니다.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세상은 왜 이토록 모순으로 가득한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며, 모든 것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 하루에 정성껏 의미를 부여합니다. 

태양이 은하를 한 바퀴 도는 2억 3,000만 년을 지구의 하루로 압축하면, 인간의 80년 생애는 불과 0.03초(1년은 약 11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찰나에 우리는 태어나 사랑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세상의 의미를 묻다가 죽습니다.

우주의 시계에서는 1초도 흐르지 않았지만, 그 순간은 우리에게 하나의 온전한 생애였습니다.

우리 삶의 참된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며, 그 찰나를 온전히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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